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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의 외할머니댁 언저리를 보면서 나는 ‘봄’을 느꼈다. 풀이 솟고 새가 노래하는 새봄이 아니라, 외할머니 얼굴에 검버섯을 심어놓은 먼 청춘의 봄. <파이란>의 강재같은 건달을 만나 그만 멍에를 쓴 봄이기도 하고, 너무 고운 아내를 둔 아주버니의 질투심 때문에 혼자 남겨져버린 <배따라기>의 그 제수씨가 되버린 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외할머니에게는 이미 지나가버린 그 쓸쓸할 것만 같은 봄이다.
외할머니의 주름은 ‘오늘도 앙가슴 두다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봄날은 간다)’로 떠나간 남정네 구두 자욱이면서,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흘리며 이별가를 불러주던(찔레꽃)’ 못잊을 밤이기도 하다. 봄을 온전하게 통과하고서도 낯설기만한 외손주의 온갖 투정을 다 받아줄 아량을 가질 수 있으랴! 굽이진 길을 굽어진 허리로 느리게 느리게 걷는 그 걸음마다에는 열 아홉에 집을 나간 딸년의 얼굴이 밟히다가도, ‘열아홉 순정’을 품어준 사내의 황토빛 팔베개가 놓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꼬부라진 발가락에 설움이 비치고, 당신이 사주던 짜장면 한 그릇에 목이 메였던 것이리라. 하지만, 나조차도 외할머니의 또다른 주름이 될 것이 분명하다. 고무신을 꿸 때마다 아련거리는 바늘구멍일 것이고, 호박을 딸 때마다 서걱거리는 손수레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물며 흙먼지 뽀얗게 날리며 덜컹거리는 버스를 볼 때마다 가슴께에 손을 얹어 동그라미를 그리시지나 않을련지. 나도 물론 외할머니가 그립긴 할 것이다. 학교가, 세상이 지겨워지는 <키즈리턴> 같은 때가 올 것이고, 나를 옥죄는 넥타이를 벗어던지고픈 <제 8요일>의 그 주인공 같은 때가 올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어쩌면 뒷간에서 나를 지켜주던 외할머니를, 외할머니가 삶아주던 백숙을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하나 내 이런 ‘어쩌면’은 외할머니의 상심에 댈 것이 아니다. 내가 떠나온 뒤로 눈을 감으시는 그날까지 외할머니는 이런 노래를 웅얼거리지 않으실까. ‘고요히 창을 열고 달빛을 보면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애수의 소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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